죄지은 자 모두 잠들어 있고
죄짓지 않은 자
홀로 깨어 있다.
술청을 앞에 하고 술 마시는
거기가 곧 선술집인데
젓가락 장단에 소매 걷어붙이고
옷가슴엔 김칫국도 튀어가야 한다.
어 어 어
우린 언제 어디서 왔나.
김춘수 시집 <處容斷章(처용단장)> - 미학사 - 1991년 10월 15일
그의 시에서 사회 참여적인 내용을 찾긴 어렵다. 특히 처용단장 연작에서. 그러나 세상이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게 만들고 있다.
세월호를 예로 들자. 자식을 잃은 부모는 말 그대로 단장의 아픔과 슬픔이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이들과, 수수방관하는 정치권과 정부, 그들은 잠꼬대나 침을 흘리며 편하게 잠을 잘 뿐이다. (2014.10.08)
선술집 밖은 여전히 한밤이다. 죄지은 자들의 시간.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하나 선술집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죄짓지 않은 자만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 하나 희망처럼 김칫국 옷에 튀었다고 누군가 물수건을 전한다. 장단을 부딪히는 '우리'가 있다. 아, 죄짓지 않은 자여. 혼자가 아니구나. 햇수로 4년 전 사회와 세상에 대해 이 시를 읽고 꼬집었는데, 칼은 나 자신으로 향하고 있다. (2018년)
벌써 10년이네. 이 시를 읽고 왜 이리 오래 묵힌 걸까? 시와 달리 나의 감상은 결코 좋은 게 없는 데. 정말 후회란 것을 붙을어 매고 있었나?
선술집 밖, 여전히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바꼈어도 세상이 바뀌지 않은 현실은 참 아프다. 윤석열이 내란을 저질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른 자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궤변을 내뱉으며 잠만 잘 자고 있다.
후회란 건 뭘까? 죄짓지 않은 자만이 가지는 고통일까? 후회, 아 쓸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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