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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 바보

횡설수설 취미/만화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08. 12. 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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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은 아이콘이다. 인터넷에서 싹이 텄지만 수영이가, 유리랑 효연이랑 주현이도 수다떨 정도로 소란스러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커져버렸다.


그의 '바보'를 내가 읽은 것은 완결되고 한참 지나서다. 바로 하지원, 차태현 주연 영화 개봉을 앞두고서다. 원작과 비교하려 읽었는데, 읽고 나서 살짝 후회했다. 나름 만족할 만한 영화를 보고 오히려 서운한 감정마저 들었으니까.


'바보'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에 사람들은 아프지 않게 꼬집는다. 그림체가 서투르다, 캐릭터가 비슷비슷한데다 그다지 특징이 없다 등등. 하지만 그것은 사족일 뿐이다. 복숭아꽃이나 라일락꽃 내음이 좋다고 그 꽃마저 동백이나 장미처럼 변하길 바라는 욕심이랄까!


'바보'를 읽고 나면 나는 바보가 된다. 단순한 그림에 숨어있는 이야기의 힘, 그걸 표현하는 그의 솜씨에 나는 바보 승룡이가 되었다. 승룡이와 달리 나는 펑펑 울고 있었다. 작은별이 된 승룡이에게 울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도 나는 결국 '바보'를 읽을 때마다 펑펑 울게 된다. 내 눈물이 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강풀의 말처럼 동네에 한명은 있던 바보.

내가 살던 동네에도 역시 바보 형이 있었다. 가물거리지만 여전히 그 때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바보는 사라지고 없다. 아니 세상은 바보를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구와 맹구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바보'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고, 그 바보의 순박한 진심 혹은 진실이 내 눈물을 쏟아냈다.


'바보'에선 나쁜 사람들이 없다. 악하지 않다. 유일한 악역이랄 술집 사장에게도 선한 자리를 조그맣게 마련했다. 그리고 모두 행복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그것은 바보가 떠난 이후다. 그것이 더 슬프고, 그 현실을 알기 때문 그가 떠난 자리를 축복하는 내 이기심에 가슴이 욱신거린다.


강풀은 행복하다. 부처의 눈에 부처가 보이듯이 행복한 사람의 눈에 행복이 보인다.


'20여년이 지났지만 풍납동엔 아직도 바보가 살 것만 같았다. 정겨웠다.'


현실의 사나움은 작가의 꿈과 달리 생소하다. 별 하나 찾기 어려운 하늘, 추워야만 가끔씩 별이 보인다. 빛나는 별. 바보는 그 별이 되었겠지. 하지만 추워야 그 별을 볼 수 밖에 없다. 서글프다. 별이 된 바보는 계속 추위에 반짝반짝 떨고 있다. 그렇지만 누가 덜덜 떨며 하늘의 별을 열심히 바라볼까?


오늘밤 겨우 몇 개만 보인다.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없나보다. 아마 저 별도 강아지, 송아지의 슬픈 눈동자가 아닐까!


승룡인 그래도 별이 되었다. 승룡이가 죽었지만 승룡이란 별은 눈이 내릴 때마다 우리 곁에 있다가 추위가 녹으면 다시 물러난다. 나도 별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마지막 유언을 남길 수 있다면 세상은 아마 살만하겠지.


눈물이 난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하늘에 별이 보일까?

행복. 착한 마음. 착한 사람. 별이 된다. 그러나 하늘에 별 하나 보기도 어렵다.

하늘에 별은 눈부시도록 많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바보처럼 헤하고 웃고 싶다.


승룡이, 영구, 맹구가 그립다. 그네들이 웃던 그 작은별이 그립다.


착한 사람들은 죽으면 작은별이 된다. 그리고 세상이 바보를 그리워하면 내리곤 한다. 이렇게 꿈꾸면 바보일까! 그러나 바보는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승룡이는 작은별을 기다린다. 언제 어디서나. 작은별은 지호의 피아노 방에 있다. 작은별은 상수의 술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은별은……?


작은별과 함께 승룡이에게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언제나 웃으라는 아빠와의 약속, 그것은 바보가 됐어도 놓치지 않았다. 남에겐 알 수 없는 슬픈 웃음으로 기억되도 승룡이는 늘 웃는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승룡이가 한 약속은 세상이 무너져도 믿을 수 있다. 그래서 또 한 번 슬프다. 나는 승룡이처럼 웃을 수 없다.


승룡이는 지호와 상수에게 미래를 잡게 만든다. 적극적으로 떼민 것은 아니지만 말없이 스스로 그 미래에 발을 떼게 만들었다. 작은별이 된 승룡이는. 승룡이처럼 웃을 수 없는 나도 한 발을 떼면 행복해질까? 아마 행복이 뭐냐고 승룡이는 빤히 내 눈을 쳐다보면서 웃겠지. 내가 슬퍼하면 승룡이도 슬퍼할 테고.


☆인상 깊은 구절☆

"그 사람이 내 오빠에요. 내가 그 사람 동생이에요."

엄마는 지인이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싶지만 줄 수 있는 선물은 오빠인 승룡이뿐이다. 하지만 어린 지인이는 엄마가 오빠만 사랑한다고, 자기에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오해하면서 오빠를 미워한다. 오빠가 늘 많은 것을 주고 있는 것을 모른 채.

오해로 꽁꽁 얼었던 10년의 시간을 몇 개의 컷에 담았다. 경이롭다. 그 고드름이 녹으면서 오버랩 되는 승룡이의 눈물은 결국 복선이 되고, 지인이의 울음 섞인 이 말을 도무지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상 깊은 장면☆

승룡이에겐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도 약속은 소중하다. 어린 시절 오해로 비롯된 지호의 울음 섞인 투정.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에 별을 내리는 지호 앞에 서지 못한 승룡이. 어른이 된 지호는 그 날 그렇게 소리친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약속을 물르면서 승룡이의 긴 그림자를 없애는 등이 켜진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둘 사이 하나둘 등이 켜진다. 동네에 작은 별이 눈부시케 빛난다.


멈춰버린 사진 이후를 기억할 수 없는 지인이를 작은별이 된 승룡이는 어떤 표정으로 볼까? 아마 웃고 있겠지.


장례식장에 어릴 적 승룡이 사진이 놓여있다. 그 사진 속 시간 저편 엄마 아빠는 어린 승룡이에게 웃으라고 보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승룡이의 얼굴이 멈춰 사진으로 장례식장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웃었을지 울었을지 엄마 아빠는 기억하겠지만 둘은 지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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