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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와키 히토시 - 기생수

횡설수설 취미/만화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08. 10. 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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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전, 2005년 예스24에 내가 리뷰로 올린 글이다.

겨우 3년이 흘렀을 뿐인데 난 어떻게 변했을까! 3년 전의 젊지만 오래된 감정을 읽어본다. 아마 시간을 내 다시 한 번 '기생수'를 펼치고 싶다. 게으른 핑계를 억누른 채 읽어 볼까, 그렇게 가정해보자. 하지만 웬만해선 바쁘다는 핑계까지 덧붙여 당분간 읽기 어렵다는 것에 2MB 하드디스크 용량을 빌려 주겠다.


만약 기생수를 다시 읽고 나서 내 감정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고개를 끄덕이거나, 뭔가 고치고 싶은 맘이 강하게 들지 않을까? 전자라면 나이만 먹었나 의기소침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자라면, 3년 전 생각을 수정하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그만큼 내가 변한 걸까? 아직 20대라면 변한다는 사실, 키가 한 뼘 더 커졌다는 기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좋게 받아들이고 싶다, 낄낄대며.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난 해맑게(?) 웃으며 순진하게 끄덕일 순 없다.


왜냐고?


주변을 봐라. 갑작스럽게 변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달빛 하나 없는 밤, 고장 난 가로등의 그림자 속에 자신을 감췄던 많은 이들이 지금 눈앞에 설치고 있다. 그들의 송곳니는 유난히 빛나고 있다. 두 눈은 벌개진 채. 정말 괴로운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 갑작스레 늘어났다는 점이다. 안타깝고 두렵다. 그들은 기생수가 아니다.


기생수가 요즘 대한민국에 살면 세상은 어떨까? 이보단 나쁘진 않을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오류라고, 기생수도 이런 세상을 외면할 거라고 반문한다면. 씁쓸하다. 가을바람, 서늘한데 귀뚜라미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밤하늘을 본다. 별 하나 없다. 춥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 남을까……"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대는 독도 100분의 1만큼 될까……"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시작부터 온몸을 떨리도록 만드는 작품들이 몇이나 될까? 다른 장르에서 굳이 찾자면 기껏해야 서정주의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시나, 카프카의 '변신'정도일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정도다. 만화에선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에게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너무나 담담한 배경, 그래서 그게 더 무서웠다. 낯설어서. 아마 이 작품은 애니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들기가 어려울 거다. 이 배경 처리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힘들어 보이니까.


고양이가 실뭉치를 가지고 논다. 그런 고양이의 꼬리를 살짝 잡아당기며 노는 아이, 누구나 한가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기억할 풍경이다. 그런데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에 쉽게 끊어지는 실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합친 거라면 어떨까? 실이 실수로 끊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까닭도 모른 채 죽어간다.
이렇게 실뭉치를 가지고 자주 실을 뚝뚝 잘라내 버리는 고양이, 아니 아이가 바로 역사속의 사람, 지배자로서, 가해자로서 본질이다.


처음부터 뚜렷한 목적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건과 사건 속에서 잠깐이라도 한눈팔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생수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 신이치가 창을 들고 기생수의 뒷목을 위에서 꿰뚫는 장면처럼 작품의 주제와 이미지, 캐릭터를 놓치지 않았다. 처음 말한 그 목적으로 직선만을 그린 채 쭉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곡선도 없고, 곁가지도 없다.


흔히 이 작품을 말하면서 그 내용만큼이나 자주 언급하는 게 바로 그림체, 그림솜씨다. 비슷비슷한 캐릭터들이 자꾸 우정 출연하는 것을 보노라면 그림만으로는 결코 잘 그린 만화는 아니다. 그러나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성격과 사건은 무겁고도 진지하며 잔인하면서 어설프기까지 한 50억의 속내를 들여다보게끔 몰입감이 크다.


오른쪽이가 '존엄한 것은 자기 목숨뿐이야' 라고 말한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나? 부정한다면 단지 사람과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몇몇 목숨이 더해질 뿐이다. 이것은 이 시대를 아니 역사를 만들어간 시대부터 사람들의 실제 속맘이 아니었을까?

자기 목숨 말고 그보다 소중히 여기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어머니들도 자식 목숨을 코 풀듯이 쉽게 옥상에서 베란다에서, 상한 배춧잎처럼 부엌에서 죽이는 세상이다.


신이치가, 혹은 오른쪽이가 바퀴벌레를 창밖으로 던지는 세상은 - 대개 파리채든지 뭐든지 죽여 버리겠지만 - 어쩜 기생수를 생각한 존재가 갖는 미래의 꿈이 살짝 엿보여 어쩜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말아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람은 이성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성에 대해 분석하고 논쟁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란 약한 것을 마구 짓밟아 버리는 가해자의 성질이란 본능에 동정과 눈물로 치장된 위선이 합쳐진 존재라면 정말 서글플 것만 같다. 지은이는 사람이 이렇게 추악하고 비열하며 잔인한 순도 100%의 존재만은 아니란 미련을 갖고 이 작품을 끝냈다. 이런 끝이 내겐 좀 아쉬웠지만 그도 나도 결국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인상 깊은 구절☆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이 말은 누가 했을까? 사람일까? 신일까? 아니면 지구 너머 존재일까? 하지만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사람의 본질을 똑바로 확인시켜주는 말일 뿐이다.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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