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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1부 - 조용필의 80년대 (1집 - 8집) 노래 추천

왁자지껄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4. 3. 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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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처럼 나도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운동장에서 놀기 바빴다. 다만 벗들과 달리 나는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가수의 노래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마 내가 음치라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조용필의 노래가 가진 힘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어린 기억 속의 친구들이 따라 부르던 노래를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조용필의 노래가 시간과 유행이라는 벽을 부술 만큼 힘이 있다는 증명이리라.


노래는 1집부터 8집까지 지구 레코드와 저작권 분쟁에 휘말린 앨범에서 골랐다. 음반사의 압력과 조용필 본인의 저항이 충돌했어도 늘 (우리에게) 사랑받는 그의 노래는 무수하다. 여기에 내 개인적인 기호를 가장 중요시해 (누군가에게 추천할) 그의 대표곡을 뽑았다.


편곡의 촌스러움과 녹음시설의 열악함을 고려해도 좋은 노래가 가진 값어치를 다시 확인했고, 시대의 간격을 느끼기 어려운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케하는 존재 중 한 명이 바로 조용필이구나 실감했다.


쓰고 정리하는 중에 지구 레코드가 배포권과 복제권을 조용필에게 돌려줬다는 훈훈한 기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01 고추잠자리 - 조용필 3 (1981)


노랫말이 당시로서 파격이었는데 그 전하는 바가 바뀔 때마다 동시에 움직이는 조용필과 밴드의 울림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구름 같기도, 바위에 부딪히는 물살 같아 그 절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인의 축복이다. 마지막 조용필의 육성으로 울림 전체를 아우르는 것 또한 기막히다.


02 킬리만자로의 표범 - 조용필 8 (1985)


어쩔 수 없이 내레이션을 처리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는 나쁘지 않다. 다만 만약이지만, 내레이션 없이 음악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다. 그것은 이 노래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갖는 욕심이다. 이 노랠 들으면 잠깐씩 한숨을 돌려도 서서히 늪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한 마리 표범으로 죽어가는 환희를 듣게 된다.


03 여행을 떠나요 - 조용필 7 (1985)


8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어쩜 가장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노래가 아닐까? 들으면 정말 여름날의 햇볕을 등에 메고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맘이 든다. 그래서 더 속이 상한다. 몸과 맘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른 채 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여유를 가질 수 없으니까.

04 자존심 - 조용필 4 (1982)


그의 음악의 한계는 어디일까? 그리고 그의 보컬의 한계는 얼마큼일까? 굿거리장단과 신나게 부딪히는 그의 노래는 장구 같기도, 날라리 같기도, 어쩌면 가야금 같기도 하다. 한오백년, 간양록으로 쌓은 내공을 터트렸다. 폭발의 섬광은 사라지지 않은 채 여진마냥 폭음을 계속 흘리고 있다.


05 단발머리 - 조용필 1 (1980)


조용필이 전설이자 신화, 그리고 현재에도 그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게 만든 첫 단추다. 이 노래는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빛난다. 도무지 수그러들 줄 모르는 매력은 저 단발머리 미녀를 외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06 비련 - 조용필 4 (1982)


오빠라는 비명을 쏟아지게 만든 노래의 제목이 비련이란 것은 뭔가 기괴하지 않은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그의 울림은 물새와 철새가 파도와 바람을 헤치며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비명은 환호다.


07 어제, 오늘, 그리고 - 조용필 7 (1985)


건반, 드럼, 보컬의 어울림이 기막히다. 바람소리를 건반으로 툭툭 끊기듯이 표현하고 뒤따라 드럼과 보컬의 맞장구는 의외성과 방황하는 인생이란 가사까지 아울렀다. 기타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건반이 흘리는 독특한 멜로디는 그의 수많은 곡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인다.


08 여와 남 - 조용필 3 (1981)


단지 남과 여만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울림은 성별마저 뛰어넘는다.


09 친구여 - 조용필 5 (1983)


최초로 교과서에 기록되었다는 사실만큼 모두 이 노래를 사랑한다. 다만 노래가 전하는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 자신이 다른 이에게도 그런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맘 편하게 취한 채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불렀지만 이젠 그럴 수 없어 오히려 부끄럽고 외면하게 된다.


10 못찾겠다 꾀꼬리 - 조용필 4 (1982)


고추잠자리로 데뷔한 김순곤의 작사는 여기서도 눈부시게 빛난다. 여우도, 무궁화도 아닌 왜 꾀꼬리였을까? 술래인 아이는 울면서 가만히 풍경을 듣고 있다. 나는 술래일까? 나는 꾀꼬리일까? 아무렴 어때? 나도 풍경을 들으면 된다.




11 창밖의 여자 - 조용필 1 (1980)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말했나? 우리 모두가 가로등이 되어 그의 커다란 그림자에 머문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조용필, 그가 토하는 울림을 처음 만나고, 그로 인한 떨림을 처음 겪는다.


12 그 겨울의 찻집 - 조용필 8 (1985)


겨울의 찻집이라고 해도 뭔가 쓸쓸한 느낌인데, 그 겨울이란다. 어떤 사연이 뭉게뭉게 밀려오고 있다. 창 밖에서 이른 아침의 찻집을 가만히 본다. 웃고 있는 여인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13 촛불 - 조용필 2 (1980)


드라마는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한진희였나? 그러나 이 노래는 멋모르고 운동장에서, 골목에서 부르던 기억이 난다. 단순하게 내뱉는 가사가 국민학생의 맘에도 편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다가왔나 보다.


14 난 아니야 - 조용필 4 (1982)


소박하게 아니라고 하는데, 이 노래의 주인공인 꼬마 아가씨는 아마 꽃일 거야. 단순하고 장식도 없지만 딸아이가 눈앞에서 부르면 엄마 아빠는 저절로 미소를 짓겠지.


15 비 오는 거리 - 조용필 5 (1983)


선곡 중 가장 덜 알려진 노래가 아닐까? 피아노와 함께 토하는 조용필의 쓸쓸함은 그리움과 두려움까지 끌어온다.



16 한오백년 - 조용필 1 (1980)


보컬로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여, 완성하고, 하지만 만족하지 않은 채 또 (새로운 소리에) 도전하고, 이렇게 반복할 수 있게 만든 기회이자 자극과도 같다. 아리랑만큼 대한민국인이 몇 소절이라도 부르거나 기억하는 것은 오롯이 조용필의 몫이다.


17 미지의 세계 - 조용필 7 (1985)


같은 앨범에 실린 '여행을 떠나요'가 겹친다. 왜 그럴까? 조용필은 한 사람인데 어떻게 한 앨범에서 저마다 다른 목울림을 낼 수 있을까? 기존 어는 곡보다도 악기들이 강하게 으르렁거리지만 멜로디와 리듬을 이끄는 그의 보컬은 그마저 쉽게 다독이며 어울린다.


18 한강 - 조용필 5 (1983)


일제의 암울한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 소리는 많이 사라지거나 왜곡된 채로 전해졌다. 그 와중에 최고의 가수가 끊임없이 우리 것, 우리 소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조용필류의 음악을 선보였다.


19 내가 어렸을 적엔 - 조용필 7 (1985)


처음 나오는 노랫말을 듣자마자 슬쩍 웃었다. 해가 동쪽에서 뜨듯 어렸을 적엔 내가 하는 행동,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인 줄 기억한다. 만약 그 기억을 나이를 먹어도 놓치지 않으면 주책이겠지.


20 나는 너 좋아 - 조용필 5 (1983)


가사부터 멜로디, 리듬, 그대로 내놔도 요즘 아이들도 열광하지 않을까? 멜로디, 리듬은 변덕스러운 편인데도 가볍게 수다를 떠는 소녀의 투정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조용필만큼 지지를 받는 비평가라고 가정해도 그의 음악을 순위로 매길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내 개인적인 기호를 우선하여 누군가에게 조용필의 대표곡 20노래만 추천해줘 부탁을 받으면 권하는 목록일 뿐이다. 다만 노래 한 곡만 뽑으라면 주저 없이 내 선택은 '고추잠자리'다. 새삼 그의 앨범을 복기하면서 그가 왜 위대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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