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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 오리 망아지 토끼

횡설수설 취미/시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3. 9. 2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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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각주:1]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각주:2]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정본 백석 시집> - 문학동네 - 1판 7쇄 2009년 9월 17일



어린 시절의 풍경을 메아리처럼 다시 붙잡고 싶던 적이 있다.


만석동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뿔이 나 우산을 육교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날 이후 뭐 사달라고 조른 기억은 없다. 부엌에 몰래 들어온 족제비를 잡겠다고 설치다가 내 다리 아래로 달아났던 기억도 떠오른다. 울상보단 괜히 분했다.


메아리를 잡으면서 울상보단, 분통보단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왜 이럴까?)

아마 내가 시인보다 한참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리라.


  1. 동쪽의 등성이 [본문으로]
  2. 짐승의 어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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