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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 봄의 消息

횡설수설 취미/시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3. 8. 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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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났다커니

봄은 위독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 와서

몸 단장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창비시선 20 개정판 신동엽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창비 - 18쇄 2009년 4월 30일



소수만이 활짝 핀 여름을 만끽하지만 대다수 군중은 아직도 겨울이다. 다만 서글픈 것은 겨울에 있는 군중 중 상당수가 봄이 얼마나 좋은지 알려하지도 않고 심지어 외면한 채 덜덜 떨고 있다. 쑥덕거린 채 눈치를 봐도, 나서서 싸우진 못해도 투표로 분명히 봄을 맞이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권리를 낭비한 채 여전히 쑥덕거리며 추위에 떨고 있다. 시가 써진 70년에서 40여년이 훌쩍 지났어도.


여전히 소수만이 활짝 핀 여름, 도무지 가을을 모르는 여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대다수 겨울 속에 살고 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 희망을 말했지만 그걸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에겐 결국 봄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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