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베 각본, 기시다 연출, '이상한 마을의 이상한 사건'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5. 12. 30. 15:18

본문

"모르겠어."


"막장 드라마를 왜 볼까? 보면서 욕하잖아.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것이거든. 개연성이 모자라도, 숫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억지스런 상황과 인물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사라지지 않고, 아침, 저녁 시간대를 도배하는 거야. 욕을 실컷 하면 스트레스도 잠깐이나마 풀리고. 그런데 이번 영화는 아무 것도 없어."


"뭐가 없냐고? 감정이입! 감정이입을 애당초 할 수 없어. 욕만 나와, 빌어먹을 스트레스까지 따라온다니까."


"무슨 배짱일까? 무슨 배짱이지? 왜 이런 영화를 제작했을까? 시나리오도 읽지 않았나? 만약 읽고서도 제작했다면,"


"내가 사장이라면 아마 담당자를 죽일지도 모르겠어. 손해가 바로 보이잖아! 투자금액도 황당해! 헐리웃 블록버스터 수십 편을 합친 것보다 많은 비용을 들였는데, 관객이 없어. 누가 보겠어. 텔레비전 드라마라면 아무리 재미없어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볼 수 있지만, 이건 영화잖아. 바로 입소문이 난다고."


"어느 장면에 그 많은 돈을 쓴 거야? 벌써 나는 48번이나 봤어? 그런데 못 찻겠어. 돈을 펑펑 쏟을 장면을 도무지 못 찻겠어."


"설명할게. 귀담아 듣지 마. 황당해서 결국 집중하게 될 테니까."




각본 : 아베 신조

연출 : 기시다 후미오

제작 : 2015년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조일동이란 마을이야. 비버리힐즈 알지? 그 동네처럼 부자들밖에 없어. 심지어 치안도 튼튼해. 시시티브이가 도처에 깔렸어. 부자들의 마을, 범죄 없는 마을, 결국 부자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란 명성을 오랫동안 지켰대.


그런데, 어느 날, 마을의 터줏대감 박해근의 외동딸인 정희가 실종된 거야. 범죄 없는 부자동네잖아. 경찰은 전혀 의욕적이지 않아. 부잣집 사춘기 아이의 단순한 일탈정도로 짐작했어. 뭐 이해못할 것은 아니야. 범죄 없는 동네니까.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전혀 연락조차 안 되고, 결국 아이 부모의 반협박에 경찰이 열흘이나 지나서야 시시티브이를 검색하기 시작했어.


경찰의 초동 대응부터 이해하기 어렵지?


부자동네라서 시시티브이가 엄청 고화질이야. 전봇대에 오줌 싸는 개미도 보인다니까. 시시티브이에 찍힌 것은 최근에 이사 온 이토일과 그의 두 아들이 박정희를 강제로 끌고 가는 장면이야. 당장 이토일의 집으로 쳐들어갔지. 경찰과 박해근은 집에 감금된 아이를 발견했어.

아빠는 딸을 보자마자 미치지. 거의 정신을 잃은 딸아이의 몸을 한눈에도 짐작할 수 있거든. 강간과 폭행으로 엉망이 된 딸.


영화는 형편없어도 두 부녀의 연기는 백점 만점에 백점이야.


박해근한테 딸이 우선이잖아. 범인들의 처리는 경찰에 맡겼어. 아이의 아버지는 몇 년을 노력했어, 정신적인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정성으로 정희의 몸만큼은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어.


딸이 살아났으니까 이제 사건의 진행상황을 알고 싶잖아. 그런데 웬걸, 웬일이야? 범인들은 자기 집에서 잘 살고 있어. 그동안 맘고생 하느라 살이 쏙 빠진 박해근과는 다른 기름진 얼굴이 오히려 클로즈업으로 잡히더라고.


당연히 박해근은 경찰과 검찰에 항의했어. 왜 가두지 않았냐고? 뭐라고 대답했을까?


이토일과 두 아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한 거야. 사진과 영상을 증거로 제시하니까, 청문회의 단골 대사 알지? 기억이 안 납니다. 숫제 이렇게 답했으면 양반이지.


도플갱어래!


도플갱어란 게 있지 않냐? 며칠 전 백화점 쇼핑을 하다가 나와 두 아들과 똑같은 얼굴을 본 기억이 난다. 사진으로 보니 더 끔찍하다. 도플갱어는 우연히라도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아마 그래서, 빌어먹을 그놈들이 나와 가족을 불편하게 하려고 이번 일을 벌인 모양이다.


시답잖은 이토일의 대꾸, 대꾸라고 해야 하나? 경찰은 별 반박을 하지 않더라고, 다행히 시대가 좋아졌잖아. 정말 좋아진 것 맞나. 유전자 검사, 정액?


고백합니다.


이토일이 갑자기 신상 고백을 하는 거야.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내 목숨보다. 그래서 영원히 숨기고 싶었다. 나에겐 아내가 모르는 자식이 셋이 있다. 아마 그놈들이 나에 대한 원망으로 이런 일을 벌였나보다. 아내에게 말곤 나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할 따름이다. 여보, 사랑해. 용서해 줘. 미안해.


이토일은 계속 부정만 해. 난 모른다. 모른다. 동네사람 모두가 이토일의 범행을 시시티브이로 목격했는데도, 정말 전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집에 숨지도 않아. 마을을 돌아다니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거야.


증거가 명백하니 박해근과 박정희는 죄에 따른 벌을 집행하라고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무대응이야. 결국 공권력을 믿을 수 없으니까, 박해근은 시시티브이 사진을 전단지로 만들어 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도 홍보를 했고, 영상을 유튜브에도 올렸어. 마을 입구와 다른 마을의 공원에 사비까지 털어 이토일의 범죄를 고발하는 조형물까지 만들었어. 10년 이상 박해근의 노력이 결코 헛되진 않았어.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 사람들도 이토일보고 사과하라고, 검경에게 왜 잡지않느냐고 따지기 시작한 거야.


오랜 시간 박해근도 많이 지쳤어. 주변 사람들이 격려를 하고 응원을 하지만 짐승같은 놈들을 처벌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몸과 맘이 많이 상했어. 하지만 딸이 더 아플 테니까, 딸과 함께 오랜만에 온천으로 떠났어.


박해근과 박정희가 잠깐 마을을 비운 사이 이토일네 집사가 마을 동장이자 부동산 중개인인 정세윤에게 마을의 안녕을 위해 결단을 내리겠다며 만나재. 난 이 상황이 이해가 안가? 동장하고 무슨 일을 할 게 있다고. 웬일이야 하면서 아무 생각 없던 동장은 집사가 준비한 서류를 보고서,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니 잠깐 기다리래. 그리고 서류의 내용을 경찰과 검찰에 연락하니까 검경은 그러면 됐다하고 수긍하는 거야. 기막히지. 절정은 아직 남았어.


절정은 동장과 이토일의 집사, 두 사람의 이름으로 합의문을 발표하는 거야. 내용은 더 지랄맞고.


'박정희가 얼마나 아팠을까, 이토일은 박정희의 고통과 상처를 통감한다.

내가 기른 자식은 아니라도 내가 낳은 자식이 저지른 일이니 아버지 또한 죄인일 수 있어 이토일이 대신 사죄한다.

이토일은 상처를 치유하라고 거금 100만원을 동장인 정세윤에게 맡겨 동장이 박정희를 달랜다.

오늘 이후 이 문제는 부동산 가격만 떨어트리니 거론하지 않는다.

전단지를 당장 떼고, 동영상을 당장 내리고, 조형물 역시 빨리 철거하라.'


합의문은 워낙 부자동네라 집집마다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마을 사람 대부분이 봤어. 단지 온천에 간 박해근과 박정희는 못 봤지.


계속 설명할까?


그냥 옛날이야기,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의 내용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