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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라면 누구를 지키는가?

쿨쿨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3. 7. 1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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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애매한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 꼭 집어 이게 바로 정답이다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제법 있다. 굼뜨게 미적거리는 것을 보고 호통을 칠 어르신이 거의 사라진 요즘은 더욱 불편해 그냥 얼버무리는 것이 최선이다. 박쥐처럼 처신해도 누구나 당당하게 욕할 수 없는 세상이 되버렸다. 그래서 댓글로 얼굴과 이름(?)을 감춘 채 날선 욕설을 날릴 뿐이다.

군인은 누구를 지키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꾸할까. 두리번 눈치를 보며 얼버무리거나 뭐지 뭘 원하지 하며 궁리해야 할 물음일까! 누구라도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그게 정답이라고 자신 있게 큰소리로 웅변하지 않을까. 물론 특이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으니 다수의 의견이라고 하자. 그러나 이 질문을 군인에게, 아니 직업군인, 그 중에서도 (국민이 내는) 세금의 혜택을 많이 받는 고위 군인이라면 100이면 100, 앞서 대꾸한 다수의 의견을 흔들림 없는 눈과 또렷한 목소리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라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소수라 변명해도 정치군인들의 욕망을 직간접적으로 너무나 강하게 겪은 역사가 있다. 그 상처로 어디선가 여전히 핏물을 흘리고, 어디선가 고름이 난다. 아직도 모든 한국인은 그 흉터가 남아있다.

그리고 이 불편한 의심, 찝찝함은 다시 한 번 꾸물거리는 장마의 습기처럼 불쑥 떠올랐다. 바로 며칠 전 국방부 대변인의 소동을 보면서 이거 이놈들 여전히 국민을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권력, 혹은 (자신보다) 권력이 강한 소수만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싶다.

해석. 해석할까. 보통 학창 시절 외국어나 국어 시간에 자주 듣던 말이다.

외국어야 남의 나라 말이니 그 뉘앙스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 조금씩 (학생들이) 다르게 해석할 지라도 전하는 목표는 한결같다. 문학 작품은 상징과 비유, 그리고 시대상황 등을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이 나온다. 당연하다.

그럼 최근 뜨거운 논란의 대상인 NLL 정상회담 회의록은? 이거 영어나 중국어인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현대시인가? 아니면 브레히트나 체홉의 연극 대본인가?

한국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해석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전문을 다 읽어본 결과 도무지 포기란 견해를 지지할 수 없는 내 입장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진 않겠다. 다만 강요를 하는 그 주체를 보며 답답할 뿐이다. 기껏 길거리에서 우연히 자주 만나는 광신도라면 모르지만 국가 기관이, 그것도 그 단체의 의견이 아닌 개인의 넘쳐나는 충성의 욕망을 담은 의지를 모든 구성원의 생각으로 만들려는 시도. 그리고 국민에게 강요하는 국정원의 문제풀이 참고서를 보며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 의견과 다른 국민, 이웃, 친구가 있다면 서로 열을 내고 다투고 싸울 수 있다. 다만 국가 기관이 이렇게 언론 전단지처럼 행동하는 게 옳은 것일까 허탈한 웃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불쑥 직업 군인들이 군홧발부터 들이밀었다.

국정원이야 당사자니까 그렇다고 한숨을 쉬며 포기하자. 그런데 왜 갑자기 국방부(대변인)가 자신들의 의견을 호소할까. 절절한 감정을 담은 채 모노드라마의 배우처럼. 연애병사에 쏠린 눈을 돌리려는 의도는 아닐 테고. 갑작스런 그들의 충성 경쟁에 허탈한 웃음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었고, 과연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전쟁이 예상과 다르게 길어지면 이 미친 충신 가족 중 한국에 남아있을 사람은 몇이나 될까?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 대다수 군인은 이렇게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군인을 지휘할 일부 고위 간부가 국민은 개뿔. 나보다 출세한 사람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끔찍할 뿐이다. 가끔씩 떠올렸던 불편한 믿음이 이번에 더 견고해졌다.

이런 군인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흰 머리에 파마처럼 주름살마저 생겼다.

국방부에 자극받아 국정원은 또 대국민 테러를 자행한다. 참 지랄도 버릇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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