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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 꽃

횡설수설 취미/시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3. 8. 1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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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 전집> - 서문당 - 초판 1986년 7월 30일



결국 혼자선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이란 존재는,


꽃을 부르는 나비처럼,

나비를 부르는 꽃처럼,

세상은 이렇게 살아가는 법이다.


꽃이, 나비가 외면한다면,

꽃이 되고 싶어

나비가 되고 싶어

빛깔을 만들고 내음을 만든다.


그래야 잊혀지지 않겠지.

잊혀지는 것은 무섭다.


꽃을, 나비를 외면한다면,

꽃이 되고 싶어

나비가 되고 싶어

빛깔을 만들고 내음을 만든다.


잊혀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빛깔과 내음으로 꽃과 나비는 만나고

잊혀지지 않는다.

살아갈 수 있다.

죽지 않는다.


꽃이 떨어져도 꽃이라 부를 수 있고,

꽃이 져도 꽃이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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