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설움과 자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창비 시선 68 김수영 시선집 - 창비 - 초판 14쇄 2008년 6월 30일 백석의 시 '修羅'가 절로 생각났다. 수라에선 거미를 지켜보는 화자가 시인이었다. 시인이 어미 거미에게서 애틋한 맘을 부여잡았다면 김수영의 시에서는 그 맘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오히려 늙어가는 거미에게서 시인이 겪었던 비명마저 시들었다. 서글픈 고통을 울며불며 이 짧은 시가 내 몸에 토하고 있다. 내 등을 뚫고 까맣게 타버린 흉터는 아물 줄을 모른다. 히로히또의 군홧발, 박정희의 군홧발. 왜 독재가 식민..
횡설수설 취미/시
2008. 10. 2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