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저쪽으로 발을 떼면
거기가 곧 죽음이라지만
죽음한테서는
역한 냄새가 난다.
나이 겨우 스물 둘, 너무 억울해서
나는 갓 태어난 별처럼
地上의 키 작은 아저씨
귀쌈을 치며 치며
울었다.
한밤에는 또 한 번 함박눈이 내리고
마을을 지나 나에게로 몰래
왔다 간 사람은 아무 데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김춘수 시집 <處容斷章(처용단장)> - 미학사 - 1991년 10월 15일
스물 둘에 난 울어본 적이 없었다. 억울한 것도 몰랐다. 그냥 원주 어느 군부대에서 건빵 혹은 컵라면을 먹으며 하릴없이 낄낄거릴 뿐이었다. 누군 죽음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래도 나의 발자국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계속 찍히고 있다.
그 발자국의 끝을 벌써부터 걱정할 까닭은 없다. 아직도 나는 젊으니까. 그리고 나는 계속 길을 밟고 있으니까. 그림자는 내 뒤를 용케 따라오니까.
(2008.10.13)
걸음을 멈췄다. 망설이며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그림자가 길게 뒤로 늘어지고 있다. 발자국을 찾을 수 없다. 지워진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난 발자국을 남기지도 못한 것인지. 이젠 내 눈으로도 미치지 못하는 거리까지 그림자가 길어졌다.
억울해서 그림자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울음을 참았다. 그리고 고갤 돌렸다. 발자국이 남든 말든 앞을 보며 걸었다.
그림자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마다 발자국이 새겨진다. (2013.05.04)
김춘수 - 處容斷章 1-4 (2) | 2009.01.02 |
---|---|
백석 - 修羅 (0) | 2008.10.27 |
김수영 - 거미 (0) | 2008.10.21 |
박목월 - 蘭 (0) | 2008.10.11 |
조정권 - 山頂墓地 6 (0) | 2008.10.11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