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무심코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났다.
일시적인 기억상실.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소유가 인애에게 했던 이 말을 무심코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다시 읽으니 이 말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인애는 대규에게 채였던 기억을 잃었다. 상처가 지워졌다. 심지어 대규란 존재마저 잊어버렸다. 사랑을 잊은 걸까 아니면 사람을 잊은 걸까? 그리고 마법처럼 불쑥 나타난 소유.
"사람을 믿어요? 사랑을 믿어요?" 아직은 어린 소유 또래가 고민하며 던질 물음이기도 하다. 소유가 인애에게 한 이 말의 대답은 당연히 듣지 못했지만 소유는 이미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답안지를 내밀게 한 인애의 행동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대규와 가졌던 '사랑'때문이었나, 아니면 사랑했던 '사람'인 대규가 던진 흉기 때문이었나. 모르겠다. 그리고 젊고 무모한 소유처럼 자신 있게 답할 수도 없고, 여전히 답할 수가 없다.
5년이란 시간을 가진 대규를, 혹은 (대규와의) 사랑을 잊은 것은 극적장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부닥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영 기억할 수 없는 소유의 친절은? 의외의 반전에 잠깐 당황한 나는 뒤이어 화가 났다. 아무리 엄마 아빠 없이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고 해도 제 목숨을 포기하다니,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난 눈물이 무척 많은 편인데 눈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먹먹했다.
인애에게 기억이 다 돌아오지 못했다. 대규가 준 상처를 기억하고, 대규와의 사랑을 기억하지만, 그로 인한 자신의 선택, 행동만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소유가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유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렸다.
인애는 소유가 직접 목에 걸어준 목걸이를 가지고 있지만 소유를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 거다.
지은이가 따스한 맘을 선보이려 한 의도는 알지만 그가 소유의 손을 잡고 시킨 일이나 그의 후기에 공감하기 어렵다. 소유의 사랑이 진짜라고, 행복할 거라고 난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니까.
☆인상 깊은 구절☆
사람을 믿지 마세요. 사랑을 믿으세요.
너무 잔인하고 슬픈, 서글픈 말이다. 제 목숨도 져버린 이런 믿음이 오히려 속상하고 서글프다.
☆인상 깊은 장면☆
취직 선물로 소유가 인애에게 준 까만 하트 목걸이. 자신의 맘처럼 어떤 것으로도 물들지 않는다. 본래 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별을 예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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