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 1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2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정본 백석 시집> - 문학동네 - 1판 7쇄 2009년 9월 17일
어린 시절의 풍경을 메아리처럼 다시 붙잡고 싶던 적이 있다.
만석동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뿔이 나 우산을 육교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날 이후 뭐 사달라고 조른 기억은 없다. 부엌에 몰래 들어온 족제비를 잡겠다고 설치다가 내 다리 아래로 달아났던 기억도 떠오른다. 울상보단 괜히 분했다.
메아리를 잡으면서 울상보단, 분통보단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왜 이럴까?)
아마 내가 시인보다 한참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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