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 ★★★☆
연출 : ★★
연기 : ★★☆
인물 : ★★☆
몰입 : ★★★☆
박수 : ★★☆
방송 : 1994.08.01 - 1994.08.30 (총 10회)
각본 : 이홍구
연출 : 정세호
주연 : 심은하, 김지수, 양정아, 이창훈
납량특집이란 말처럼 서늘함을 여름날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포 드라마다. 당시 공포물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예외적인 것이라면 전설의 고향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방송 출신이다. 문화방송에선 없었다.
제작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의욕이 넘쳤다. 무조건 공포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로 인한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낙태의 부산물인 기억분자가 완전한 인격을 지배한다는 설정은 독특하고 놀라웠다. 단지 공포만으로 끝나는 일본과 미국의 경우와 달리 사회물, 심리물의 특징을 지녀 이후 여고괴담, 장화홍련 등의 작품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 단발이라도 엠과 은희 사이 일종의 동성애 코드는 당시 충격이었지만 지금 감탄으로 변했다.
성공만 하면 공포물이란 장르의 전범, 표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설정의 참신함만큼 (드라마의) 서사나 (등장인물의) 의식 등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연출이나 배우의 행동이 아닌 (배우가 마치 시청자에게 보도하는 것처럼 비추는) 지나친 설명은 새로울 수 있는 드라마를 볼품없게 만들었다.
특히 눈에 띄는, 혹은 귀에 들리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서투른 인턴이 편집을 담당했는지, 디지털처럼 뚝뚝 끊어지는 장면과 장면들의 어색함은 볼 때마다 내 귀가 빨개지고, 더빙처럼 들리는 발성은 내 귓구멍을 후비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심은하나 김지수의 연기 말곤 어색한데 이런 것들이 애당초 힘든 몰입을 쉽게 훼방 놓았다.
이창훈이 연기한 지석은 분명 기계체조선수다. 그러나 물구나무 하나에도 부르르 힘겹게 떠는 장면은 요즘 복근과 도구의 도움으로 그럴싸하게 만든 것과 유독 비교가 된다. 엉망진창 패션쇼로 확인하는 미장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이 넘치고 넘친다.
각본을 보자. 마리, 주리 혹은 엠의 행동은 늘 갑작스럽다. 마리와 지석의 추억이 깃든 나무에서 만나는 우연성은 애써 무시해도 그 행동에 대해 늘 제 3자가 변명을 한다. 가장 압권은 역시 마리와 은희와 지석의 사랑이다.
엑스세대인 재벌집 외동딸인 은희가 친구인 마리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의사가 된 마리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작가는 첫사랑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나 의심이 들었다.
8년의 시간이란 것이 그렇게 가볍고 단순한 것인가? 여고생 마리와 짧고 풋풋했던 사랑 때문 어른이 되서 8년의 시간동안 쌓인 은희와의 성숙하고 농밀한 사랑을 지석은 머뭇거리거나 포기할 수 있나. 감정의 변화, 감정의 흐름이 일방적이고 단순하다.
공포에 낙태라는 사회 현상을 담아낸 작가가 이런 황당한 사랑이라니? 마치 은희와 지석, 마리의 사랑은 0과 1, 아스키 코드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나! 갖고 싶던 아이템을 놓쳐서 오래 전에 저장한 파일을 불러들여 다시 게임을 진행하는 건가.
갑작스런 신파의 등장은 우리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용서란 죄악이 당시에도 여전히 기승을 떨치고 있었구나 쓴웃음이 나왔다. 지석이 마리에게 기생한 엠을 받아들이면서 하는 변명 역시 안쓰러움보다 웃음이 터졌고, (김정일의 갑작스런 죽음처럼) 마리와 지석이 굴뚝을 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군대가 아닌 경찰이 튀어나와 비극을 만들자 난 만세를 포기했다.
연출, 편집, 시나리오, 연기, 미장센, 모자란 것 투성이다. 그런데도 난 이 드라마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을 늘 꿈꾼다. 엠이 존재했던 세상보다 지금은 더 살벌하다. 낙태가 아닌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쉽게 쓰레기통이나 변소에 버리는 세상이니까.
슬프게도 엠의 참신하고 독특한 기획과 설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더구나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만 있다면 기대보다 나은 작품이 분명 나올 거라 믿는다. 현대 과학기술은 뼈만 제대로 있다면 뼈의 인물을 실체로 구현하고 있다. 엠이란 작품의 뼈는 어떤 것보다 완벽하다. 단 녹색 눈동자와 음악은 뼈에 속한다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마리, 주리, 혹은 엠, 1인 3역, 그리고 뜬금없는 편집에도 심은하의 연기는 그가 왜 뛰어난 배우로 커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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