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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참회록

횡설수설 취미/시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7. 3. 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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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정본 윤동주 전집> - 문학과지성사 - 초판 6쇄 2009년 1월 9일



나는 지난날을 참회한 적이 있던가. 아, 나는 지난날, 그 영광을 번민하며 후회한 채 다시 그날이 왔으면 궁상과 미련을 떨었을 뿐이다.


뒷모양도 아니고, 슬픈 사람도 아니고, 부끄러운 고백을 당차게 밝히며 기뻐할 수 있는 내 얼굴을 거울 속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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