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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강(江) 배

횡설수설 취미/시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18. 4. 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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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빛을 배불리 받고

거슬러 오는 작은 배는

온 강의 맑은 바람을

한 돛에 가득히 실었다.

구슬픈 노 젓는 소리는

봄 하늘에 사라지는데

강가의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손짓을 한다.



세계시인선 40 한용운 <님의 침묵> - 민음사 - 개정판 3쇄 2007년 3월 10일



연안부두 바다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뿌릴 때 몹시 추웠다. 상복 하나만이라 며칠 몸살까지 앓았다. 12월초, 하지만 일 년은 훌쩍 지난 것만 같다.

장례식장에서 몇 잔의 술 이후 피하다가 요즘 가끔씩 술을 마신다. 아버진 저곳에서 술을 드셨으려나. 그리 좋아하시는데. 맘껏 드시고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 행복한 가족을 만났으면, 늘 그렇게 한참을 빌었는데. 요즘 소망을 잊고 있었다.

봄이라서 잊고 있었나? 개나리도 피고, 목련도 피고, 하지만 오늘 황사와 함께 쌀쌀해지더니 내일 꽃샘추위란다.


유리창을 바람이 자꾸 두들기고 있다. 맑은 바람. 아버지가 두드리는 것은 아니겠지. 좋은 세상에서 태어났을 테니까.


구슬픈 노 젓는 소리는 나의 후회를 대신한 변명 같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아버지에게 하고픈 말을 전할 수 없다.


술, 사실 매일 마시는 아버지의 막걸리 냄새가 집에 배는 것이, 늘 어눌하게 맴도는 것이 싫었는데, 자꾸만 그 냄새가 그립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손짓을 할 일은 없지만 내가 아버지한테 손짓을 하고 싶은데 노 젓는 소리가 아무리 커도 배엔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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