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개 뿐인 소재로 만든 한 개 뿐인 장르.
소재는 재벌, 복수, 핏줄. 이 소재를 재료로 결국 만들어낸 요리는 대개 연애물이란 장르다. 애당초 드라마를 기획할 때 중심에 연애물이라고 굵게 박아놓고 컴퍼스를 돌린다. 기승전결로 원을 그리면서 만나는 파편들이 재벌, 복수, 핏줄뿐이다.
2. 웬 놈의 주제 의식이 이리 거창한지?
1% 부유층의 수비와 공격, 그리고 포옹. 그렇게 껴안은 세력으로 좀 더 견고해지는 부유층의 벽. 거의 모든 드라마가 1%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계급투쟁이다. 격렬하게 성을 방어하지만 결국 부자들은 용서와 관용을 서민에게 베풀어 문을 열어준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겉으론 연애이고 그 밑바닥은 결국 격렬한 계급투쟁이다. 마치 물위에 떠있는 고니를 보는 것만 같다.
3. 제작을 준비할 때 주연배우가 거의 전부다.
드라마의 시청률 등을 살펴보면 역시 대본의 완성도가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성공 요소에 가장 적은 비중인 배우의 이름값에 무모할 만큼 매달린다. 소비자인 시청자는 갈수록 상식에 반응하는데 생산자는 여전히 예외에 몰두하고 있다.
4. 한류?
한류는 의외로 제법 버티고 있지만 모래 위의 성과 같다.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내세웠다기보다 갑자기 등 떠밀려 유행이 시작되었다. 그 가벼움에 쓰레기가 무수히 양산되고, 그 수준에 맞게 국내에선 외면당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아직 비싼 값에 동남아 등지에 팔리고 있다. (우리가 미드에 열광하는 것처럼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왜 제작사는 대개 손해를 보는가? 그들의 제작 방법론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종학의 자살에서 보듯이 일부 배우의 배만 불리는 한류에서 수많은 제작사가 무너진다면 과연 어떻게 이후를 준비할 수 있을까?
5. 한 번 뜨면 무조건 주연이다.
결코 장점으로 내세울 수 없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순기능이 일어났다. 제작자는 계속 새로운 얼굴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새로운 배우들이 계속 이 자그만 나라에서 태어난다. 그 나물에 그 밥뿐인 일본과 비교해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비교우위다.
6. 음악이 풍부하다.
일본 드라마가 한곡 많아야 두곡뿐인 빈곤함에 비하면 양과 질 훨씬 낫다. 드라마에 실린 음악의 수를 본다면 일본, 미국 드라마는 너무 건조하고 우리 드라마는 너무 질퍽하다. 시장이 워낙 작다보니 제작사의 이런 선택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용서?
하지만 우리 드라마를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한다면 바로 용서다. 소재는 재벌, 복수, 핏줄. 주제는 계급투쟁. 장르는 연애물. 그러나 결론은, 노골적인 마침표는 용서하자. 모든 것이 결국 용서로 귀결된다. 빌어먹을 용서.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처럼 용서를 남용한다. 그러니 친일파도 청산 안하고, 28만원이 전 재산인 놈을 세금으로 먹여 살리고 있는 거다.
용서란 말이 싫다. 어쩌다 혹은 가끔이면 상관없지만 자주 혹은 늘 이렇다면 내가 토해내는 감정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용서란 어느 순간 약자의 의무, 피해자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강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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