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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하덕규

횡설수설 취미/샘이 깊은 노래

by 흙냄새 밟고 오르다 2009. 4. 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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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랍군 고양이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않고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을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아픔 없는 꼬리

너무너무 좋을테지


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고양이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그 아픔없는 눈 슬픔 없는 꼬리

너무너무 좋을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슬픔 없는 두 눈

너무너무 좋을테지




시인과 촌장 - 푸른 돛 (1986)




세상살이가 버거운 소시민의 일상이 엿보인다. 고양이에 대한 속모를 부러움은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난장이인 소시민이 내뱉는 무거운 한숨에 지워졌다.


20년 전이나 이제나 난장이의 풍경은 그대로다. 다만 가끔 마주치던 슬픔 없는 두 눈을 가졌던, 귀여운 발톱으로 허공을 맘 놓고 휘저어 난장이의 부러움을 샀던 고양이는 오래전 잊어버린 얇은 지갑처럼 사라졌다.


쓰레기를 뒤지는 더러운 발톱을 가진 놈은 야옹도 외치지 못한 채 멀어져가고, 나른하게 유리창으로 넘어오는 햇살에 낮잠만 긁적이는 발톱을 가진 놈은 지붕위에 올라서지도 못한다.


더 이상 난장이는 고양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깨진 가로등 아래 빈 술병처럼 쓰러져있는 고양이, 햇살보다 뜨거운 커튼에 휘둘리는 거세된 고양이.


고양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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