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창비 시선 68 김수영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 창비 - 초판 14쇄 2008년 6월 30일
마지막 시라서 그런가. 풀이 눕듯이 모든 것을 놓은 듯하다. 참여든, 저항이든, 상징이든, 자의식 과잉이든, 허세든, 이전까지 그를 억압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듯하다. 단 무소유와 분명 다르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풀이 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풀을 밟아, 풀을 밟아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결국 나는 바람에 눕고 우는 존재일 뿐인가? 바람보다 빨리 울 순 없다. 그리고 먼저 일어날 순 없다.
그러나 내 웃음소리도?
하~ 하~ 하~!
내 웃음소리가 풀을 눕힌다. 밟은 것이 아니다. 내 웃음소리가 바람이려나.
그러나 (바람이 풀을 눕히듯이) 내가 웃으려면? …….
……,
웃어야지 웃어야지 하면서,
…….
위의 소감은 7년전인데,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내 맘이 왜 바위 같을까? 결코 단단하지 않고, 늘 변덕스러운 나란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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